현대문명과 동물 5

 

글 / 임동주

마야무역 대표. 수의사


인류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생존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왔다. “빵을 달라”는 파리 시민들의 한 서린 외침을 들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후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지, 왜 저렇게 떼를 써”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소 과장되고 실제와 달리 왜곡된 말이라고도 하지만, 배부른 사람들이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표현한 대표적인 말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구촌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식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굶주림의 공포를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류의 오랜 소원인, 굶주림으로부터의 완전한 탈피가 이루어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생물학, 화학, 공학, 농학 등의 발전 덕분에 비료의 개발, 종자의 개량, 농업의 기계화 등이 이루어져 단위면적 당 곡물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면서 인류가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20세기 현대문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굶주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인류의 욕망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의 가렴주구로 인해 농촌이 피폐해진 가운데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식량 자급을 위해 농촌진흥청은 단위면적 당 생산량이 높은 통일벼를 개발해, 1972년부터 전국에 보급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1977년에 이르러 비로소 쌀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쌀 때문에 혼식을 장려하던 정부의 정책도 사라졌고, 오랫동안 금지했던 쌀막걸리의 제조도 다시 허가되었다. 정부는 이를 녹색혁명의 성취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녹색혁명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단순히 식량생산만 늘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일벼는 생산성이 높았지만 밥맛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의 ‘한계효용체감限界效用遞減)의 법칙’에 따라 배불리 먹게 된 이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좀 더 맛있는 음식, 보다 질 좋은 음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1970년 우리 국민들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약 136.4㎏이었고, 1985년에도 128.1㎏이었지만, 2016년에는 겨우 61.9㎏에 불과할 정도로 30년 사이에 소비량이 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국민 소득이 증가한 만큼, 사람들은 점점 맛있는 쌀을 원하게 되었고, 한때 맛은 떨어지지만 생산성이 높아 기적의 벼라고 칭송받던 통일벼는 이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쌀 소비는 줄어들었지만, 30여 년 사이에 과일과 채소의 소비는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육류는 약 10배, 우유는 1천 배 이상 늘었다.

이렇게 식량소비의 패턴이 변하면서, 외국으로부터 사료용으로 사용되는 옥수수를 비롯해,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 소고기, 치즈, 삼겹살 등의 수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농민들도 더는 쌀농사만 고집하지 않고, 채소와 과일, 인삼 등 특용 작물 그리고 닭과 소, 돼지 등 축산물 생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문명은 먹을거리의 질을 변화시켰다. 가장 중요한 식생활의 변화는 육류 소비의 급증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대다수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기준을 고기를 먹는 것에서 찾는다. 가난했던 우리 조상들은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는 날이 오기를 소원했다.

수년 전 모 개그맨이 유행시킨 “돈 벌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 묵겠지.” 라는 말은 고기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단적으로 표현해준 말이었다.

20세기 후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한국인의 육류 소비량은 계속 증가해왔다. 1970년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5.2㎏이었으나, 1980년에 11.3㎏, 90년에 19.9㎏, 95년에 27.4㎏, 그리고 2014년에는 45.1㎏이나 되었다.

소고기의 경우 1970년에 겨우 1.2㎏을 소비했지만, 2014년에 10.8㎏을 소비해, 무려 10배로 증가했다. 돼지고기는 2.6㎏에서 21.5㎏으로 역시 8배 이상 늘었고, 닭고기도 1.4㎏에서 12.8㎏으로 9배 이상 증가했다. 달걀의 경우도 77개에서 254개로 3.3배 증가했다.

조선시대 우유는 궁중에서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사진 필자제공
조선시대 우유는 궁중에서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사진 필자제공

가장 크게 급증한 것은 우유 소비량이다. 조선시대에는 우유가 매우 귀해서 궁중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1961년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은 불과 45g이었다. 그런데 2014년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이 대폭 늘어나 72.4㎏에 달했다. 무려 1,600배 이상이나 늘어난 것이다.

우유의 생산량 역시 1961년 1,168톤에 불과했는데, 이는 2014년 하루 평균 생산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 생산량은 약 200만 톤에 달하고 있어 무려 1천 7백 배 이상 급증했다. 과거에는 젖소가 드물었지만, 지금은 젖소사육이 보편화되고 사육 두수가 크게 증가한 때문이다.

육류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면, 그에 맞게 생산도 늘어나야 한다. 육류 공급량이 변하지 않았는데 수요만 늘어난다면 육류 가격은 천정부지로 급등할 수밖에 없다. 소득이 올라도 소고기 값이 자꾸 비싸진다면,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가 없으니 소득 향상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먹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늘어난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공급도 빠르게 증가해야 한다. 그래야 가격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대량의 육류를 공급하여 많은 사람들이 값싸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값싼 고기의 등장은 ‘고기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헐벗고 굶주렸던 보릿고개를 기억하던 어르신네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류의 오랜 로망인 맛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고기 뷔페의 등장은 천국이 도래한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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