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사랑, 인간 이롭게 해

글 / 김진만

이뮨리아드 대표

우리동물문화연구소 부소장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매우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과연 성공할지 의문이었는데, 잘 마무리돼 다행이다.

이 드라마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과연 자폐증에 걸린 사람이 변호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추상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변호사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나오기 이전에 자폐증에 걸려도 생각보다 자기의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템플 그랜딘’으로 자폐아를 둔 부모에게는 거의 맹목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이다. 템플 그랜딘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분이 동물행동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녀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사실 템플 그랜딘이 없었다면 아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단순히 백치 천재라고 불리는 서번트 증후군 환자 즉,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밖에 별로 할 말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학자들이 자폐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자폐가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보통 인간은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동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즉 동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동물은 이성을 담당하는 두뇌의 기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보통 개가 문제행동을 하면, 자기를 미워해서 보복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개 그러한 행동은 불안과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템플 그랜딘이 동물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감정과 그림이다.

우선 감정을 연구한 ‘야크 판셉트’의 ‘7가지 감정’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동물을 이해하는 가이드를 만든 사람이 템플 그랜딘이다. 동물의 중요한 감정 7가지를 기준으로 여러 동물의 행동을 설득력 있게 해석했다.

그리고 그는 동물이 생각하는 방식은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림이라는 것은 머릿속의 그려진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녀가 동물 행동을 잘 이해하는 것은 템플 그랜딘 그녀 자신이 추상적인 사고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추상적인 사고 대신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서 사고한다. 그래서 템플 그랜딘은 수학 특히 대수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녀가 그림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동물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도 많은 통찰을 줬다.

동물복지농장의 토대를 마련한 닥터 템플그랜딘은 드라마 우영우와 같은 서번트 증후군을 극복했다. 사진 필자제공
동물복지농장의 토대를 마련한 닥터 템플그랜딘은 드라마 우영우와 같은 서번트 증후군을 극복했다. 사진 필자제공

늑대는 다른 늑대 무리를 만나면 그들과 싸우고, 자신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여의찮다면 다른 무리의 늑대를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들은 전혀 다르다. 지구상에서 개가 주인 없이 자유롭게 사는 곳들이 많은데, 이들을 관찰한 결과 개들은 서로 다른 개들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같은 공간 내에 많은 개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과거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공격성이 달랐다. 이것은 유골에도 나타난다. 눈썹 부분이 튀어나온 유골은 태아시기에 테스토스테론이라는 공격성을 유발하는 호르몬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구석기 시대의 유골에서 훨씬 많이 발견된다.

즉 신석기에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보다 적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도 과거에는 늑대처럼 살았지만, 지금은 개와 비슷하게 자기 가축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가축화라고 말하면 뭔가 기분이 나쁘지만, 사실 가축화는 사회적 동물이 돼 간다는 의미고, 좋게 말하면 친절한 사람이 돼 간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기껏해야 100명 단위로 살아갔지만, 그 이후로 부족이 만들어지고 지역사회가 만들어지고 국가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이 자기 가축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자기 가축화는 다른 동물과 다른데, 다른 동물은 대개 두뇌 피질이 감소했지만, 인간만은 변연계라고 해서 중뇌가 줄어들었고, 이 부분이 바로 감정과 관련된 영역이다. 사실 소뇌는 워낙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결코 줄어들 수가 없지만, 중뇌와 대뇌는 필요에 따라서 줄어들 수 있다.

사람의 자기 가축화가 모든 민족이나 인종에게 같은 수준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가축화의 특징 중 하나가 동안(나이에 비해서 젊어 보이는 얼굴)인데, 아무래도 동안은 동북 아시아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가축화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각 나라나 지역마다 서로 다른 방향의 가축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늑대는 서로 다른 무리의 개체를 보면 싸운다. 하지만 개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사실로 유추해본다면 가축화는 더욱 강한 사회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역시 우리나라 사람처럼 집단의식이 강한 나라 사람들이 더욱 가축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것은 자기 가축화의 방향으로 인간이 진화한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나라 사람들이 진화가 덜 됐으므로 우리가 우월하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진화가 일어나는 방향이 장기적으로 자기 가축화 방향이겠지만, 이것은 인구 밀도와 관련된 적응의 문제이지 모든 나라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가축화가 되면서 동물을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은 우리가 잃어버린 능력으로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우리가 동물을 이해하는 방법은 생각을 멈추고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치기 개들은 양을 물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우선 양들과 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리어 견종과 비교해도 양치기견은 다른 견종들 보다 양을 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당장 바로 나타나는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위협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양치기 개는 뭔가 알 수는 없지만, 양을 물면 안 될 것 같은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닭이 알을 낳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많은 닭이 알을 낳기 위해 잘 숨겨진 공간을 찾아들어 간다. 이것은 뭔가 탁 트인 공간에서 알을 낳으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서 더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기 것이지 당장 여우를 비롯한 다른 포식자가 눈에 보여서 숨는 것이 아니다.

사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의 하나가 바로 두려움이다. 사람이 도덕을 지키는 것도 도덕을 지키지 않으면 뭔가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바로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모든 문제행동의 근본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들어 동물행동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동물의 두려움을 찾는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용기가 될 수 있고 자신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수한 퍼포먼스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극복하지 못하는 두려움은 결국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신적인 질병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양치기견이 강박증 같은 정신병(아직 동물에게 정신병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는 않지만)이 발병한 빈도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영우 변호사가 장애로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르게 만들어 준 것은 우영우가 가진 두려움을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친절하면 친절할수록 앞으로의 세계는 더욱더 행복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곁의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주변의 동물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푼다면 인간이 갖지 못하고 있는 능력으로 인간을 충분히 이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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